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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대가 만난 사람-4 유기농 이철규편
유기농을 통해 진리를 찾는 삶!-이철규
의성군민신문 기자 / muk4569@naver.com입력 : 2014년 10월 05일(일) 11:30
이철규씨의 인터뷰는 순전히 우연이었다.
대구에서 친환경 식당을 운영하는 대학동기가 이웃면 단밀에 유기농사과를 구매하러 간다며 같이 가자고 연락이 와서 따라 나섰다. 아는 곳이라 생색내며 네비남 역할을 하며 안내를 했는데 꼴좋게도 헛다리를 짚었다. 알고 보니 내가 아는 집이 아니라 반대편에 있는 집이었다. 그곳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사람, 집, 땅 보이는 모든 것들이 지금의 시대와 동 떨어진 자유로움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이철규씨와 초면인줄 알았는데 경북농민사관학교에서 나에게 강의를 들었다며 인사를 했다. 주인장의 안내로 농장을 둘러보았다. 온갖 풀과 사과나무가 어우러져 있는 과수원, 마늘과 구분이 쉽지 않는 크기의 양파, 지하수를 퍼 올려 벼농사를 짓고 있는 지수답(地水畓), 비닐을 대신하여 왕겨와 마른 풀들이 깔려 있는 채소밭, 현장은 유기농 인증표가 필요 없을 만큼 꾸밈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창고에서 꺼낸 사과를 맛보면서 직업병이 도지기 시작했다. 종대가 만난 사람 주인공으로 인터뷰를 하고 싶은 욕심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친구 일행과 다음 방문 장소인 문경에 함께 가기로 약속을 한터라 중간에 빠질 수 없었다. 혹시 일손이 부족하면 연락을 하라는 말을 전하고 자리를 떠야했다.
ⓒ 의성군민신문
며칠이 지나 사과 봉지를 씌우는 일을 도와달라며 연락이 왔다. 이철규씨는 사과봉지 씌우는 일 때문에 전화를 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인터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얼씨구나 하며 카메라와 수첩을 챙겨 자전거에 올랐다. 집에서 사과농장까지 얼마나 걸릴지 출발 시간을 확인하고 페달을 밟았다. 농장 도착까지 30분이 소요 되었다. 주인장에게 사과봉지 씌우는 것을 교육 받고 일을 시작했다. 사과 적과는 경험이 있지만 사과 봉지 씌우는 것은 처음이라 조심스럽기도 하고 손도 더뎠다. 아무리 인터뷰 목적으로 왔다고 하지만 품값은 해 주어야 하기에 물거름을 누는 시간 외에는 쉬지 않고 일했다. 일을 마치고 안주인이 끓여주신 수제비를 먹고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했다.
ⓒ 의성군민신문
농사는 언제부터 짓게 되었나요?
21살 때 원양어선 배에 오르려고 준비하다가 집에 잠깐 쉬러 왔었는데 아버님이 농어민후계자를 신청하여 군복무 대신 사과 농사를 도와달라는 말씀을 하셔서 그때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하여 만 18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기농 사과 인증은 12년 전에 받았습니다.
 
유기농 사과 인증은 12년 전에 받았다고 하셨는데 유기농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셨는지?
일본의 후쿠호카 마사노부(자연농법 창시자)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분처럼 농사를 통해서 진리를 체험하면서 살고 싶었습니다. 마침 어른께서도 저농약으로 사과농사를 짓고 계셨는데 제가 무농약 사과농사에 한번 도전 해 보기로 하고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책의 어떤 내용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까?
후쿠호카 마사노부 선생은 기존의 화학농법이 농작물의 수확을 증대시켰지만 지력의 저하, 환경오염 등을 불러왔기 때문에 자연생태와 인간의 이익이 충돌하지 않는 자연농법을 창시하셨습니다. 그 실천방법으로 땅을 갈지 않는 무경운, 풀을 제거하지 않는 무제초, 농약을 치지 않는 무농약, 비료를 주지 않는 무비료 네 가지를 설정하셨습니다. 이 네 가지를 사무농법(四無農法)이라 합니다. 이렇게 했을 때 환경오염을 줄이고 토양을 살리면서 농산물의 품질도 높아진다는 것이 책의 주요 내용인데 저도 따라하고 싶었습니다.
 
책을 통한 감명과 땅을 통한 현실은 다를 것 같은데요?
제가 무농약으로 사과농사를 지은 지 15년 정도 되었습니다. 초기 3년은 저농약에서 무농약으로 전환기라 그런지 병충해의 피해가 적었습니다. 그래서 소득도 어느 정도는 되었어요. 그런데 4년 째 부터는 병충해 피해가 많아 고생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기적의 사과로 유명한 일본의 기무라 아키노리 씨를 찾아가 교육을 받고 배운대로 시도를 해 보았지만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를 않아요. 갈수록 갈반병(잎이 말라 떨어지는 병)이 심해져 이대로 가다가는 농사 자체가 안 될 것 같아 2년 전부터 석회보르도액(유기농살균제)을 한 두 번 뿌리고 사과에 봉지를 씌우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숨을 쉴 정도가 되었습니다.
 
본인이 직접 경험한 유기농의 구체적인 어려움은 어떤 것입니까?
유기농의 어려움으로는 품종과 토양에 있다고 봅니다. 현재 과일의 품종 대부분은 당도와 크기를 키우기 위해 외국에서 계량된 품종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토양에 맞지 않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과실이 크고 당도가 높기 때문에 많은 영양을 필요로 하고 벌레들이 좋아 합니다. 농약과 비료, 거름을 사용하지 않고는 과일 농사는 거의 불가능 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야생에 있는 개복숭아 나무가 농약이나 비료 없이도 잘 자라고 과실을 잘 만드는 것과 비교를 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유기농을 하면서 개인이 체감하는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비료농약 뿐만 아니라 퇴비도 주지 않으니 일반 사과나무에 비해 수확량이 50%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결국 돈이 안 되니까 가장 힘들었습니다. 품종의 문제가 있다는 원인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하고 돌아가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10년 이상 자연재배의 목적을 가지고 품종의 개선을 위해 접목 등을 실험하고 있는데 과일나무라는 것이 바로 성과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최소 10년은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답답한 점이 많아요. 어떤 때는 내가 왜 이런 생고생을 하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때마다 세상이 포기하더라도 나 혼자만이라도 유기농사과를 소비자들에게 공급하자는 마음으로 근근히 버티고 있습니다.
ⓒ 의성군민신문
건강한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공급하겠다는 다짐만으로는 유기농을 버텨나가기에는 역부족일 것 같은데요. 무엇인가 다른 힘이 있을 것 같습니다?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의 근원은 종교적인 힘인 것 같습니다. 저는 기독교 모태신앙이 있었지만 중 2때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어 중 3때는 머리가 아파서 견딜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답을 찾기 위해 전국에 이름난 스승을 찾아다니며 온갖 마음수련과 무술을 연마했습니다. 찾아간 사람 중에 사이비도 많았지만 진실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진실 된 스승이었지만 그 분들에게 답을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5년간의 방황 끝에 죽음에 대해 답을 내릴 수 있는 것은 기독교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21살부터 아버지 밑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성경 공부를 다시 시작했는데 25살 때 예수님을 만나는 종교적인 체험을 하면서 어떤 확신과 정신적인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십계명에 살인을 하지 말라는 계명이 있는데 성서적으로 보면 건강하지 못한 농산물도 간접살인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난 영적인 체험이후 부터 성경의 말씀을 실천하는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돈이 안 되더라도 유기농은 기독교 농사꾼의 의무라 생각합니다.
 
지금의 아내는 어떻게 만났고 가족 관계는?
홍성풀무학교를 졸업하고 그곳 생협에서 빵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지금의 집사람을 만났습니다. 집사람은 학교과정으로 2년 동안 농사를 경험했기 때문에 농사에 대한 경험도 있고 농업을 바라보는 시각도 저와 비슷하여 연예 결혼을 하였습니다. 자녀들로는 현재 아들 세 명을 두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획과 바람이 있다면?
현재 사과농사 중심에서 체험과 교육농장을 병행하여 운영하고 싶습니다. 특히 구약에 나오는 성소惺所(구약 시대에 제사장이 하나님에게 제물을 바치고 의식을 베풀던 곳)의 실제 모형을 만들어서 기독교의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체험장을 운영하는 것이 바람입니다.
 
밤이 늦어 자전거와 나를 트럭으로 바래다주면서 그는 나에게 고백 아닌 고백을 했다. 농사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개인이 실천하고 감당할 수 있는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미움이 일어나는 품성은 해결하기 힘들다고 했다. 종교적인 신념이 지나치면 하늘만 바라보고 살 수가 있는데 자신의 내면까지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으니 균형감을 갖추고 있었다.
 
내용보다는 겉모습의 치장에 열을 올리는 세상의 흐름 가운데 앞 뒤 모습, 발가벗은 모습이 다르지 않는 샘물 같은 사람을 만나 모처럼 시원한 물 한잔을 마실 수 있었다
 
[인터뷰 ‘2014. 6. 10]
ⓒ 의성군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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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송종대 /조금 적게 벌고 좀 더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그는 의성에 없어서는 안될 인물이다 
 
의성군민신문 기자  muk45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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