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를 사랑하다 최순실을 만난 TK의 가슴이 흔들리고 있다. 더는 친박에 내어 줄 순정은 없다. 40년 이 지독한 외사랑에 남겨진 것은 고통스런 침묵일 뿐이다. 어디 서러운 눈물로 하소연 할 언덕조차 없다. 왜 TK는 모든 것을 내어 주고도 이런 가시밭길을 걷고 있는가.
10년 전부터 경제가 꼴찌를 헤메는 데도 시장은 특별한 조치를 내지도 않는다. 그래도‘자랑스런 대구시민’이라는 현수막은 돈이 없어 구멍 난 바지주머니를 가리고, 뮤지컬이니 오페라니 시민들이 모르는 세계적인 문화대구의 고급진 실루엣이 조롱하듯 거리를 팔랑거리고 있다. 새누리당의 요청에 3선의 도지사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쌓아온 명성에 심각한 데미지를 입히는 TK정신을 발휘할 수 밖에 없었다. TK에 있어서 현실을 직시하면 무한긍정의 법칙에 위배되고, ‘NO’라고 외치면 소수의 불만분자가 된다.
그러나 어쩌랴. 수많은 생계형 알바아줌마들도 대통령을 자기 손으로 뽑았다는 자부심을 갖고 하루하루를 긍정으로 살고, 선거철이 오면 힘차게‘엄지척’을 날려주는 페밀리 정신의 소유자들이 바로 TK의 모습인 것을. 알만한 식자층도, 의식있는 청년들도 오랜 양생기간으로 완전히 다져진 이 TK표 콘크리트 멘탈바닥을 뚫어낼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보다 손쉬운 TK탈출이 빠른 선택이고 후세를 위한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줄기 찬 K고 학연의 TK집권이 지역의 혁신을 가로막고, 수십 년 지역 밀착형 M언론이 여론의 방향을 한 쪽으로 끌고 간 후유증일 수도 있겠지만, TK 40년 지역의 정치성향은 이제 자타공인 보수의 본산이 되어 있다. 실로 보수랍시고 누군가 정당을 꾸리려면 먼저 TK에 와서 보따리를 풀어야 한다.
보수의 성향은 잘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번 지지를 얻으면 지속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의 TK는 보수의 본산이라기보다는 정치권의 기득권 싸움에 버려진 보수의 식민지에 가깝다.
TK는 박정희의 향수가 무시당하는 것을 참을 수는 없다. TK는 몇몇 비디오를 보고 박정희를 폄하하는 사람들을 그 시대를 살지 않았거나 박정희의 장기독재 하의 피해자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혼란한 시대상황에서 강력한 권력을 지닌 정부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현재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었다고 믿는다. 그러한 뿌리가 박근혜 정부의 탄생을 도운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TK의 지금의 모습은 무조건적인 보수지지 지역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게 되었다. 몹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보수성향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보수가치가 흔들리고 있는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에 있는 TK의 가슴을 보듬어 주는 정치인은 정작 TK에는 없다. 그래서 더욱 무겁게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침묵이 지금 TK의 정서이다. 오랫동안 모든 것을 부었던 첫사랑에 실패한 TK의 가슴을 힐링하고, 다시는 정치적 식민지로서 그들의 사다리 역할만 강요당하지 않는 그런 정치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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